Kayo Dot “Hubardo”

Kayo Dot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이들의 상당수는 분명 메탈 팬들이겠지만 그렇다고 이 밴드가 메탈 밴드인가를 묻는다면 답은 꽤 애매할 것이다. “Choirs of the Eye”와 “Gamma Knife” 에서 보여준 메탈의 면모들이 있지만, “Dousing Anemone with Cooper Tongue”, “Blue Lambency Downward”, “Coyote”처럼 예의 그 어두운 분위기를 차치하고라고 메탈은 아니었던 앨범들도 많았다. 아마도 Maudlin of the Well의 “Bath”와 “Leaving your Body Map”이 보여준 두 가지 사운드의 노선을 나름의 방식으로 발전시킨 결과가 아닐지 짐작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Kayo Dot의 괴팍한 작풍은 그 노선을 단순히 발전시켰다기보다는 그 방법론들을 아예 전복시켜 버린 부분이 더 많을 것이다.

“Hubardo”는 그런 의미에서 밴드의 디스코그라피를 통틀어 가장 메탈적인 앨범일 것이다. 당장 첫 곡인 ‘The Black Stone’부터 간만에 들어보는 Jason Byron의 그로울링이 등장한다. ‘Floodgate’나 ‘Zilda Casogi’ 같은 곡의 ‘chaotic’한 분위기는 이전까지의 밴드에게서 볼 수 없었던 모습인데, 그래도 꽤 불규칙적인 진행을 보여주던 이전의 앨범들 – 이를테면 “Blue Lambency Downward” – 에 비해서는 앨범은 비교적 논리적으로 전개되고, 밴드도 중간중간 앰비언트와 포스트록 패시지를 통해 청자에게 여유를 던져주는만큼 듣기는 밴드의 앨범들 중에서는 어렵지 않은 편이다. ‘Crown in the Muck’ 이나, King Crimson을 열심히 따라하는 듯한 ‘Floodgate’ 같은 곡들은 밴드의 여느 앨범들보다 격렬하면서도 ‘프로그레시브’하다고 말할 구석이 많을 것이다.

Kayo Dot의 앨범들 중에서 최애를 꼽는다면 “Choirs of the Eye”와 함께 가장 유력한 앨범이 아닐까? 프로그레시브한 메탈을 좋아한다고 자처하는 이라면 일청을 권한다.

[Ice Level Music, 2013]

Genocide Organ “Obituary of the Americas”

블로그 주인장의 썸네일 이미지가 대체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분들이 있어 설명할 겸. 1989년부터 활동해 온 이 파워 일렉트로닉스 거물의 현재까지는 마지막 정규 앨범인데, 원래 민감한 소재들을 골라 묵직한 음악을 만들어내곤 했던 밴드이지만 이젠 지역의 내전이나 군벌 얘기를 넘어서 직접 남미를 휘젓던 미국의 모습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바꿔 말하면 밴드의 그간의 어느 앨범에 비교하더라도 좀 더 ‘직접적인’ 메세지를 예상할 수 있는데(뭐 이런 음악을 누가 메세지 생각하고 듣기야 하겠냐마는), 그래서인지 “Under-Kontrakt”에서 조금은 잦아들었던 공격성은 이 앨범에서 다시 강해진 모습을 보여준다. 좀 더 장르의 본령에 집중한 앨범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Genocide Organ이 늘 그랬듯 구조 자체는 심플하고, 총성이나 남미 군벌들의 목소리 등 다양한 샘플링과 점진적으로 빨라지거나 느려지는 드론 사운드 등이 공격적인 노이즈와 함께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한다. 밴드의 다른 앨범들에 비해서 굳이 특징적이라면 보컬이 좀 더 다양한 양상들을 보여준다는 점인데(물론 노래를 한다는 얘기는 아님), 소재가 소재이다보니 스페인어 가사까지 소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지독하게 뒤틀린 신서사이저와 불길한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피드백이 돋보이는 ‘Escuela de las Americas’가 앨범의 스타일을 대변하는 곡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Genocide Organ의 초기작들을 알고 있다면 좀 더 친숙하게 들을 만한 앨범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파워 일렉트로닉스의 가장 지독한 부류들을 접하는 입문작으로도 유용해 보이는 앨범이다. 그래도 워낙에 듣기 피곤한 스타일이다보니 어느 정도는 각오가 필요하다. 하긴 이런 류의 음악들은 ‘감상’이라기보다는 음악을 ‘체험’한다고 하는 게 더 적절해 보이는 구석이 있다. 그런 음악이다.

[Tesco, 2016]

Scorpion Wind “Heaven Sent”

사실 Boyd Rice가 Death in June에 참여하거나, Douglas P.가 Boyd Rice의 솔로작에 참여한 적은 많지만, 이 둘이 함께 밴드의 멤버로서 활동한 사례는 “Alarm Agents” 앨범을 제외하면 이 앨범이 유일하다. 그렇지만 ‘법적 문제’로 실제로 Scorpion Wind라는 이름으로 활동이 이어지지는 못했고, 이후 2007년에야 다시 Nerus에서 “Death in June & Boyd Rice”의 “Scorpion Wind” 앨범으로 재발매했다…는 게 일반적으로 알려진 얘기다. 하지만 저 ‘법적 문제’가 대체 뭔지는 찾아봐도 나오질 않고, “Heaven Sent”로 나온 1996년 버전이 10유로에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판인지라 그냥 잘 안 팔린 걸 법적 문제로 소수만이 들어볼 수 있었다고 뻥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딱히 그럴 이유는 없긴 하겠지만 말이다.

음악은 Death in June 류의 네오포크에 Boyd Rice의 나레이션에 가까운 – 좋게 얘기하면 ‘레치타티보’ – 보컬이 실리는 스타일인데, 시절은 바야흐로 “Rose Clouds of Holocaust”와 “Occidental Martyr”로 Douglas P.의 송라이팅이 절정에 이르던 시절이었고, 음악적 역량을 떠나서 트롤링으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Boyd Rice의 위악이 이에 합쳐져 독특한 매력을 만들어낸다. ‘The Cruelty of the Heavens’의 공격적인 비트에 사드, 다눈치오 등의 텍스트를 버무려내는 모습이나. Ennio Moricone마냥 낭만적인 연주를 업고 소셜 다위니즘을 논하는 ‘Love Love Love’ 같은 곡을 겁도 없이 내놓는 패기 넘치는 앨범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In Vino Veritas’ 같은 곡의 서정(과 낭만 어린 스트링)은 가사야 잔뜩 미쳐 있을지언정 이들이 어쨌든 브리티쉬 포크 전통의 끝단에 맞닿아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꽤 다양한 모습들을 담고 있는 앨범인 셈인데, 그러면서도 오컬트적인 내용을 주로 다루었던 “Alarm Agents”에 비해 좀 더 현실적이고 사회적인 소재들을 다루고 있는 만큼, 트롤링이라는 측면에서도 이 앨범이 좀 더 강력하다.

Boyd Rice의 똑똑한 듯 잔뜩 미쳐 있는 광기가 가장 잘 드러나는 앨범이라고 생각하고, 그만큼 곱씹으면 Boyd Rice가 내놓은 앨범들 중 가장 불쾌한 구석이 있는 앨범이겠지만, 네오포크의 역사에서 꼭 언급되어야 할 시절의 중요한 앨범들 중 하나임에는 분명하다. Douglas P.의 전성기 한가운데가 그대로 담겨 있는 앨범이다.

[Twilight Command, 1996]

Black Swan “When the Angels of Twilight Dance”

4대 핀란드 심포닉블랙의 마지막 한 자리를 잡은 밴드는 Black Swan이고… 이 ‘4대 밴드’ 중 가장 미약했던 것이 Count de Nocte였다면 가장 단명했던 것은 Black Swan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Black Swan이 좀 잘 나갔느냐 하면 전혀 아니긴 한데, 이후 보컬인 Anti가 Dolorian에서 무시무시한 보컬을 들려주면서 그 전임 밴드였던 Black Swan까지 덩달아 주목받았던 기억이 있는 만큼 Mad Lion에서 지금까지 와신상담만 하고 있는 Count de Nocte보다는 좀 낫지 않았나… 싶다. 하긴 무의미한 비교일 것이다. 각설하고.

음악은 기본적으로 미드템포에 간간히 블래스트비트나 변박을 섞어 가며 나름대로 탄력적인 구성을 보여주려 노력하는 블랙메탈이다. Arthemesia처럼 테크니컬한 면모가 드러나는 스타일은 아니고, 기본적으로는 트레몰로로 곡을 이끌어 나가는 좀 더 ‘고전적인’ 형태의 블랙메탈에 가깝다. ‘Under Cloak and Hood’ 정도를 제외한다면 키보드가 확실히 전면에 나서는 곡도 없는지라 이걸 심포닉이라고 부르는 자체를 동의하지 못할 이들도 있어 보인다. 결국 일반적인 심포닉 블랙메탈의 팬들에게는 좀 단조롭게 들릴 가능성도 농후한데, 그런 면에서는 그냥 ‘atmospheric’ 블랙메탈 정도로 소개되는 게 밴드에게는 더 나은 방향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그래도 멜로디나 곡 자체는 꽤 흥미롭다. 이제 와서는 새로울 거 하나 없는 스타일이 되어버렸지만(뭐 사실은 그 때도 그렇긴 했다) 장르의 팬이라면 기회를 줄 정도로는 충분하다.

[Mastervox, 1998]

Arthemesia “Devs – Iratvs”

핀란드 심포닉블랙 얘기가 나온 김에 간만에. 말이 핀란드 4대 심포닉블랙이지 다른 밴드들과는 좀 레벨이 달랐던 …And Oceans를 빼고 가장 좋은 평가를 듣곤 했던 밴드는 Arthemesia였던 걸로 기억한다. Native North는 Einherjer의 Frode가 만든 레이블이었고, 본인들부터가 노르웨이 바이킹블랙의 1군…이라기엔 2% 부족하긴 했지만 충분한 기량을 보여준 밴드였으므로, 사실상 Einherjer를 제외하고는 Native North의 1호 발매작인 Arthemesia의 이 데뷔작은 나오기 전부터 꽤 관심을 모았다. 신보 공구라는 게 그래도 꽤 의미가 있었던 2001년에 1호 공구로 이 앨범을 진행했던 기억이 있으니 분명 그랬을 것이다.

음악은 꽤 수준 높은 블랙메탈이다. Wintersun의 Jari Mäenpää는 이미 이 때부터 빛나는 기타 연주를 들려줄 수 있었고, 레이블 1호작이라고 얼마나 힘을 줬는지 무척이나 깔끔한 – Einherjer 자기들 앨범보다도 훨씬 – 음질도 인상적이다. ‘Ancestor of Magick’의 클래시컬하면서도 화려한 기타 연주나, ‘Universal Black’의 Dissection을 의식했을 극적인 구성 등은 Arthemesia가 화려한 키보드를 앞세우다 다른 파트가 모조리 묻혀버리는 과오를 저지르곤 하는 이 장르의 많은 밴드들과는 레벨을 달리함을 보여준다. 사실 건반이 화려할 뿐 곡을 이끌어 나가는 건 분명 노르웨이 블랙메탈의 리프이기도 하고.

하지만 Frode는 Einherjer의 핵심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거래 매너 X같은 이로도 유명했고, 이 수려했던 블랙메탈 앨범이 주문한 지 4개월이 지나서야 비로소 통관절차를 밟는 모습을 보고 그 사실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으며, 그 4개월 동안 어느 게시판에서 열심히 십자포화를 맞고 나서 듣게 된 이 앨범의 음악은 한동안 처음 접한 그 날과는 상당히 다르게 들렸다. 밴드의 단명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아마 너무나 X같았던 레이블 복도 큰 몫 했을 것이다. 세상엔 뜻대로 안 되는 게 참 많은 셈이다.

[Native North,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