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ep of Kalessin “Skygger av Sorg”

Keep of Kalessin의 대망의 첫 데모? 사실 첫 데모라기엔 데뷔작과 같은 해에 나온데다 이 데모의 수록곡들은 모두 그 데뷔 앨범 “Through Times of War”에 재녹음되어(물론 곡명은 다 바뀌었음) 다시 실렸으므로 바야흐로 데뷔작을 위한 용틀임… 정도의 데모이겠지만, 하긴 데모라는 게 원래 그러라고 만드는 것이 아닌가? 따지고 보면 이만큼 데모 본연의 역할을 다한 사례도 그리 많지는 않은 편이다. 각설하고,

그런데 정작 이 데모의 음악은 데뷔작과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다. 데모와 정규 앨범의 차이 정도가 아니라 이 데모는 이후의 앨범보다 비교적 여유 있는 전개를 보여준다. 블랙메탈이기는 하지만 보컬은 좀 더 데스메탈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도 차이점인데, 그래도 밴드 특유의 서사에 방점을 찍은 전개는 여전하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사실 말이 데모지 이 정도면 블랙메탈 데모로서는 최상의 음질로 꼽힐 사례가 아닐까 싶은 만큼(동시대 노르웨이 밴드들 데모들의 개똥같은 녹음을 생각하면 더욱 돋보인다) 이 정도면 그냥 편곡의 차이라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원래 Keep of Kalessin이 스피드로 승부하는 밴드는 아니기도 하고.

그 시절 블랙메탈 데모 중에서는 손꼽힐 만한 작품 중 하나이겠지만, 그래도 수록곡들이 모두 정규반에 실린 만큼 밴드의 팬이 아니라면 굳이 구할 필요는 없을지도? 그래도 2000년대 초반부터 밴드 오피셜 홈페이지에 공짜로 다운로드가 풀린 데모여서인지 나온 지 거의 30년 된 데모들 중 이만큼 구하기 쉬운 사례도 많지는 않으니 블랙메탈 데모에 관심을 가져보려는 분이라면 한번 구해봐도 좋을지도.

[Demonion, 1995]

Legenda “Eclipse”

Beherit에 대한 핀란드 블랙메탈 밴드들의 ‘리스펙트’야 음악을 들어보기 전부터도 알고 있었지만 Impaled Nazarene에 대한 것도 그에 그리 뒤처지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는 데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이유야 사실 뭐가 중요하겠냐마는 굳이 곰곰이 따져본다면 아무래도 “The Oath of Black Blood” 같은 앨범에 비해서는 “Tol Compt Norz Norz Norz”나 “Ugra-Karma” 같은 앨범은 좀 더 멍청해 보였다는 점이 크지 않았을까? 음악 스타일도 다르지만 우리는 핵에너지와 환경파괴를 서포트한다고 써놓고 있는 게 뭔가 프로레슬링 기믹 같아 보였을 수도 있고.

흥미로운 점은 ‘Suomi Finland Perkele”까지 밴드의 중핵 중 하나였을 Sir Luttinen은 저 Impaled Nazarene을 제외하면 커리어가 대부분 소위 ‘Tico-Tico 스타일’의 메탈로 꾸려져 있다는 사실인데, Tico-Tico 스튜디오 식의 음악이라면 왠지 그건 진짜배기 메탈이 아니라고 강변할 것 같은 Impaled Nazarene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좀 많이 의외다. (이런 걸 봐서라도 Impaled Nazarene의 프로레슬링 기믹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Legenda는 그 중에서도 Impaled Nazarene과는 가장 동떨어져 보이는 사례라고 할 수 있는데, 블랙메탈식으로 달려주는 곡이 없는 건 아니지만 결국 앨범의 주된 스타일은 미드템포의 둠적인 분위기를 살짝 머금은 키보드가 강조된 ‘doomy-black’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고(정작 앨범이 나왔을 즈음에는 그냥 키보드 빵빵한 멜로딕 블랙이라고 했던 것 같기는 하다), 그러면서 멜로디 잘 쓰고 ‘Rev. 66’나 ‘Cohores of Demons’ 같은 곡에서는 Catamenia 마냥 나름의 심포닉도 보여주면서 어떠한 실험도 하지 않으니 장르의 팬이라면 딱히 불만스러울 부분이 없어 보인다. 굳이 실험 얘기를 해서 그렇지 사실 1998년에는 이게 딱히 케케묵은 스타일도 아니었을 테니 그걸 흠이라고 하기도 어려워 보이고, 그 시절 이런 밴드들이 있었기 때문에 결국 Spinefarm 같은 곳도 먹고 살 수 있었던 게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인간적으로 이런 음악 하는 밴드한테 너무 안전하게 갔다고 뭐라 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Holy, 1998]

Twelfth Night “Sequences”

또 특이한 사실은 이 곡은 처음에는 데뷔작을 내기도 전에 연주곡으로 만들어졌다가 Geoff Mann이 합류하면서 비로소 전장으로 떠나는 어느 자원입대하는 군인의 이야기가 담긴 가사가 붙었다는 점이고, 그 버전이 비로소 완성된 게 Marquee 클럽에서의 Geoff Mann 고별공연이었다… 라는 게 밴드의 설명이다. 말하자면 ‘Sequences’의 제대로 된 풀 버전은 저 “Live and Let Live”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는 것인데, 문제는 이런 걸 만들어 놓고 밴드를 떠나 버렸으니 그 후임자는 감히 부르면 욕먹을 만한 노래가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덕분인지 ‘Sequences’가 실린 라이브앨범은 많지만, Geoff Mann이 아닌 다른 보컬이 붙은 앨범은 (내가 알기로는)2019년의 “A Night to Remember” 하나 뿐이다. 하긴 저거 부담스러워서 부르기도 어려울 것 같다.

그러니까 Geoff Mann의 버전으로 완성되어 버린 이 곡을 이젠 Andy Sears도 아닌 Mark Spencer의 보컬로 다시 녹음할 이유는 그냥 이 곡을 다시 밴드의 레퍼토리로 편입시키기 위함이 아니었으려나(밴드가 말하는 퇴역 군인들에 대한 자선 목적은 일단 빼고)? 하필 “Live and Let Live”가 명연이었던지라 ‘Sequences’만 세 가지 버전으로 새로 녹음해 실어 놓은 EP를 보고 처음 드는 생각은 굳이 왜…. 인 것은 나만은 아니겠지 싶다. 그래도 Mark의 보컬도 괜찮은 편이고, “Live and Let Live”의 버전보다는 연주도 좀 더 길어지고 새로운 아이디어도 들어간지라(특히 결말의 피아노는 꽤 인상적인 편이다), 애초에 ‘Sequences’를 알고 있었다면 흥미롭게 듣기에 부족함은 없다. 밴드의 팬이라면 일청을 권해본다.

[Self-financed, 2018]

Twelfth Night “Live and Let Live”

Twelfth Night의 가장 뛰어났던 한 장을 고른다면 그건 “Fact and Fiction”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밴드 최고의 매력이 그 시절 네오프로그 밴드답지 않게 화끈한 면모에 있었다는 점에서 밴드의 매력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앨범은 “Live and Let Live”일 것이다. 일단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라이센스된 Twelfth Night의 앨범이므로 접근성에서도 더할 나위 없고, 밴드가 Geoff Mann과 함께 한 마지막 공연을 담아낸 앨범인만큼 ‘역사적’ 가치라는 면에서도 떨어지지 않는다. 물론 Twelfth Night 얘기를 하면서 역사적 가치까지 운운하는 건 내가 봐도 과해 보이기는 하다만 자칭 빠돌이 입장에서 못 할 얘기도 딱히 없긴 하다.

Geoff Mann의 마지막 공연이었다지만 Geoff Mann의 커리어에서 정점을 찾는다면 이 라이브일 것이고, 단연 ‘We Are Sane’과 더불어 밴드 최고의 명곡일 ‘Sequences’가 제대로 실린 첫 앨범이라는 점은 이 앨범을 밴드의 다른 라이브와는 다른 지위에 올려놓는다. 사실 노래를 더 잘 하는 건 Andy Sears라고 생각하지만 이 시절의 Geoff Mann의 가끔은 미친놈 같을 정도로 연극적인 보컬은 확실히 대체불가의 무언가에 가까워 보인다. 덕분에 밴드의 곡들 중에서도 확실히 메탈릭한 편인 ‘East of Eden’도 겉돌지 않는다. 사실 곡과 곡 사이마다 좀 멘트가 과하다 싶은데, 그것만 아니었으면 웬만한 NWOBHM 밴드의 라이브앨범에 흡사할 에너지의 앨범이었을 것이다… 라고 말하면 많이 과장은 아닐 것이다.

말하자면 1983년, 데뷔작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어쨌든 떡잎부터 때깔이 달랐던 Marillion을 빼고 이 구역의 그 시절 2인자를 꼽는다면 Twelfth Night가 아니었을까… 생각될 정도의 명연이라 할 수 있겠다. 이랬던 그 보컬이 갑자기 교회 오빠로 변신하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의 당혹감은 어땠을지 조금 궁금해진다. 물론 그래도 우리 주변의 교회 오빠들과는 좀 많이 달라 보이기는 한다.

[Music for Nations, 1984]

Sadist “Above the Light”

Sadist는 그 시절 테크니컬 데스 밴드들 중에서는 꽤 독특한 위치를 점했던 밴드.. 라고 생각한다. 일단 그 시절 테크니컬 데스 밴드가 Cynic이나 Atheist의 그것과는 조금 다른 무언가… 를 보여주는 데 성공한 사례 자체가 별로 없었고, 이탈리아 출신이어서인지 이 장르에서 이만큼 ‘creepy’한 사운드를 들려준 사례도 별로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Morrisound의 괴수들에 비해서는 동급… 보다는 반 수 아래 정도의 테크닉을 보여주긴 하지만, 그래도 3인조로 이만큼 정교한 테크니컬 데스를 연주하는 것도 확실히 어려워 보인다. 키보드를 이만큼 존재감 있게 사용한 데스메탈 밴드가 1993년에 얼마나 됐을까 하면 이 밴드가 꽤나 드문 사례였다는 점은 더욱 분명해 보인다.

이 밴드의 특징이라면 기타만큼…은 아니지만 키보드에 상당한 비중을 할애하고 있다는 점인데, 기타를 못 치는 건 아니지만 기타와 키보드를 동시에 맡고 있는 Tommy Talamanca는 기타보다는 키보드에서 좀 더 나아 보이는 연주를 보여주고, 이 장르에서 흔히 등장하는 유니즌 플레이보다는 기타와 키보드가 서로의 파트를 주고받는 류의 인터플레이가 더욱 흔히 등장한다. 혼자 기타와 키보드를 동시에 칠 수 없어서인지 기타 쳤다 키보드 쳤다 했나 의심되는 수준인데, 은근 Goblin류의 분위기(특히 “Suspiria”)에 흡사한 스타일의 키보드에서 이어지는 Coroner풍 리프가 꽤 독특한 개성을 자아내는 편이다. 인트로인 ‘Nadir’부터 앨범의 이런 개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편이고, ‘Desert Divinities’의 느슨한 네오클래시컬 연주까지 마주하게 되면 이탈리아 특유의 은은한 싼티 어린 메탈 스타일이 어떻게 테크니컬 데스에 수용되었는지의 많은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싼티를 극복할 수 있다면 충분히 박력있고 멋진 데스메탈 앨범일 것이다. 사실 그런 의미에선 이 시절 앨범을 차라리 재녹음해서 내놓아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작년에 나온 “Firescorched”가 안 그래도 초창기 스타일이라고 평도 좋았으니 데뷔작 재녹음! 같은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물론 앨범 찍어내는 데 돈 한푼 안 내는 입장이니만큼 할 수 있는 얘기다. Agonia가 그런 걸 내지는 않겠지.

[Nosferatu,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