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주에 본 Sigh 공연을 기억하며 간만에. 확실히 느낀 것은 어쨌든 블랙메탈 밴드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이 밴드만큼 블랙메탈 소리 들으면서 장르의 컨벤션을 많이 벗어나는 밴드도 흔치만은 않을 것이고, 그런 부류의 밴드들 중에서도 이 밴드만큼 파워메탈(나아가 때로는 쟈파메탈) 기운 강한 사례는 정말 드물어 보인다는 점이다. 밴드가 생각하는 스스로의 정체성도 그랬을지는 모르나 공연에서 “Scorn Defeat”와 “Infidel Art”의 곡은 들은 기억이 없다. 나름 신곡 외에 예전 넘버들도 안배 잘 한 셋리스트였는데 그 시절의 Sigh와 지금의 Sigh는 이제 많이 다른 밴드가 되어 버렸다는 방증일지도 모르겠다. 각설하고.
말이 나와서 말이지만 밴드가 연주했던 가장 오래된 넘버는 바로 이 EP의 ‘Soushiki’와 ‘Shingointachikawa’였고, 이후의 넘버들과도 그리 위화감 없이 어울렸던만큼 Sigh라는 밴드의 현재 모습의 맹아는 바로 이 “Ghastly Funeral Theatre”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어 보인다. 그래도 아직은 블랙메탈의 기운이 강하지만 “Infidel Art”의 화려하다 못해 과시적인 구석까지 있던 심포닉은 화려함을 덜어내고 좀 더 오컬트한 분위기로 기울었고, ‘Doman Seman’이나 ‘Ghastly Funeral Theatre’의 신서사이저가 중심이 된 프로그레시브한 전개는 훗날 밴드가 “Hangman’s Hymn”에서 보여줄 방향성을 예고한다. 밴드가 색소폰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앨범이기도 한데, 이 앨범에서야 그저 신서사이저 모듈 소리지만 “Gallows Gallery”에서부터는 드디어 사람이 색소폰을 연주하기 시작해서 현재에 이르고 있으니 생각보다 많은 것을 시작한 앨범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이 EP를 밴드의 최고 명작이라고 하기는 좀 어렵더라도 밴드가 가장 생산적이었던 시기의 결과물이라고 하는 건 무리가 없어 보인다.
Cacophonous 초판을 나름 애지중지하고 있었는데 금년 Peaceville 재발매반이 보너스가 엄청 알차다니 구해 봐야겠다.
[Cacophonous,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