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verna Liniya(Скверна Линия) “In a Garland of Wax(В венке из воска)”

러시아 블랙메탈 밴드의 데뷔작. 보통 프로그레시브 블랙메탈 정도로 얘기되고 있는데, 그렇다고 변화무쌍한 구성을 보여주는 밴드는 아니고 적당히 고딕 무드를 덧씌운 분위기 위주의 진행에 리프를 계속해서 변주해 가면서 나아가는 모습이 꽤 인상적이다. 특히 ‘Шорох тлеющей жизни(The Rustle of moldering Life)’에서의 생각보다 테크니컬한 면모를 보여주는 솔로잉은 이 밴드가 왜 프로그레시브 소리를 듣곤 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Зеленый ужас(Green Horror)’의 건반에서는 포스트락의 모습 또한 진하게 드러난다. 그러니 요새는 이미 익숙해진 면모들이지만 결국 보통 프로그레시브 블랙메탈이라는 레떼르에서 기대하는 모습과는 비교적 거리가 있는 셈이다.

그래도 앨범은 전반적으로 에너지와 분위기를 모두 잃지 않는 편이다. 레이블 발매작의 평균보다도 조금은 거칠게(그리고 싼티나게) 녹음된 기타 리프는 반면 두터운 연주의 신서사이저와 비교적 깔끔한 톤으로 뽑아내는 멜로디라인과 묘한 조화를 이룬다. 그러다가도 ‘Пылал закат над сумасшедшим домом… (The Sunset Blazed over the Madhouse)’에서 화음을 조금씩 일그러뜨리면서 ‘카오틱’한 분위기에 이르는 모습에서 아마도 2020년대에 왜 아직도 이런 블랙메탈을 듣고 있는지에 대한 꽤 설득력 있(어 보이)는 답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고 이 음악을 듣고 블랙메탈을 입문하는 이가 있을까 하면 여전히 고개는 갸웃거려지긴 한다만.

그리고 앨범에서 가장 둠적인 ‘На забытых просторах(In Forgotten Wide Spaces)’은 (물론 여전히 블랙메탈이긴 하지만) 내가 최근 몇 개월간 들은 블랙메탈 중에서는 스타일을 불문하고 가장 극적인 곡이었다. 명곡의 반열에 올릴만하다.

[Casus Belli Musica, 2021]

Vuzem “Ortus”

앞서 “A.B.M.S.: Norici Obscura Pars” 앨범 글에서 Vuzem 얘기를 했는데, Vuzem에 관심 가졌던 이들은 꽤나 많았지만 이 밴드가 Vuzem이란 이름으로 내놓은 곡은 저 컴필레이션에 실린 2곡이 유이했고, 그러니까 이 밴드가 드디어 거의 24년만에 처음으로 단독 앨범을 낸다는 소식은 (그때까지 Vuzem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꽤 솔깃한 만한 얘기였다. 하긴 그러니 저 컴필레이션의 2곡을 그대로 정규 1집인 것처럼 재발매하는 뻘짓을 하는데도 에라 모르겠다 하고 사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멀리 갈 거 없이 내 얘기다.

뭐, 그래도 일단 앨범 커버는 꽤 멋지다(고 생각한다). 저 노스페라투 그림자는 맥락상 왜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컴필레이션의 멋없는 커버와는 분명 다르고, 수록된 2곡의 수려함이야 이미 24년 전에 충분히 검증된 만큼 걱정할 필요는 없다. 중세적인 분위기가 묻어나면서도 Abigor보다는 덜 어두웠던 90년대 중반 오스트리아 심포닉 블랙의 어느 전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어쨌든 그 이미 잘 알고 있는(그리고 아마 이미 CD로 가지고 있을) 1995년의 2곡을 아무런 재작업도 없이 그대로 실어두고 있으니 굳이 Vuzem의 이름만 보고 사는 이들이 아니라면 본전 생각 나기 충분할 것이다. 다만 Vuzem의 곡을 바이닐로 듣고 싶다면 이걸 사는 수밖에 없으니 그런 이들에게는 조금은 더 유용할런지도.

[Casus Belli Musica, 2019]

Seltar “Autoscopia”

Casus Belli Musica 발매작들을 꽤 좋아하는 편인데, 간혹 포스트록 기운이 지나친 블랙메탈(또는 진짜로 포스트락) 앨범들은 좀 적응이 되지 않는 편이지만 대개 이 레이블의 발매작들은 충분히 멜로딕하고, 90년대 초중반의 그것과는 궤가 다르지만 꽤 인상적인 분위기를 보여준다. 앨범 아트워크나 음질도 골방 가내수공업 수준의 많은 밴드들과는 비교를 거부하는 수준인데, 앨범 하나에 기껏 100장이나 200장 정도만을 찍어내고 있으니 모으는 데는 약간의 주의가 필요하다. 그러니까 바꿔 말하면 퀄리티 컨트롤 확실하게 하면서 딱 손해 안 볼만큼만 찍어내는(손해 좀 보긴 하려나…) 레이블이라고 할 수 있겠다.

Seltar는 이 레이블이 가장 일가견 있는 스타일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 뉴저지 출신 블랙메탈 원맨 프로젝트(그리고 알고 보면 Wayfaerer의 바로 그 놈)가 가장 신경쓰는 부분은 분명 멜랑콜리한 분위기이지만 중간중간 공격적인 패시지를 잊지 않는 극적인 구성 덕분에 짧지 않은 곡들이지만 지루하다고 느낄 여유는 없어 보인다. 무슨 스펙터리안 블랙메탈을 추구하려는지 두텁게 배치하는 멜로디라인에 살짝 에코 걸린 래스핑은 Lustre 같은 밴드들을 참고했겠지만 ‘Niebla’ 후반부의 스래쉬 리프에 이어지는 심플한 멜로딕 파워메탈풍 솔로잉은 이들의 블랙메탈이 사실 어두운 분위기 등과는 거리를 두고 있음도 여실히 보여준다.

말하자면 시절을 반영해 어느 정도 변화된 류의 멜로딕 블랙메탈이라 생각하고, 취향이야 타겠지만 최근에 들은 블랙메탈 앨범들 중에서는 가장 ‘웰메이드’인 앨범들 중 하나일 것이다. 솔직히 ‘Regresare’는 듣다가 좀 감명깊었다.

[Casus Belli Musica, 2021]

Mastermind “Excelsior!”

그러고 보면 Mastermind 앨범 얘기를 하면서 마냥 좋게 얘기한 적도 딱히 없는데 앨범은 다 갖고 있으니 내가 이 밴드에 꽤 애착이 있었구나… 싶지만 또 막상 들어보면 내가 왜 굳이 다 갖고 있을까 의문이 드는 싶은 밴드가 Mastermind라고 생각한다. 멤버들의 잘 다듬어진 테크닉과 꽤 복잡한 구조 위에 실리는 나쁘잖은 멜로디가 있지만 밴드를 이끄는 Bill Berends가 끝내 버리지 못하는 맥아리 없는 보컬은 지금껏 적응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그런 시각에서 “Excelsior!”는 밴드의 최고작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앨범이다. 일단 밴드의 앨범들 중 유일하게 Bill Berends가 노래를 하지 않는 앨범이고(하긴 인스트루멘탈이니), 대체 어떻게 영입했는지는 모르겠으나 Jens Johansson의 영입은 밴드의 ELP 그림자 짙은 심포닉 프로그에 더 나아가 재즈퓨전과 본격적인 프로그레시브 메탈의 색채를 입혔다고 생각한다. ‘On the Road By Noon’의 Bill Berends와 Jens Johansson의 인터플레이는 과장 좀 섞으면 Mahavishnu Orchestra의 한창 시절 모습을 닮아 있고, ‘The Red Hour’ 정도를 제외하면 Bill Berends의 연주는 Keith Emerson보다는 Jan Hammer의 모습에 가깝다. 이미 통상의 심포닉 프로그와는 좀 선을 그은 셈이다.

그렇지만 밴드의 앨범들 중에서 이런 방향으로 나아간 건 또 이 앨범이 유일하니 다른 앨범들이 좋았다면 조금은 당황스러울지도? 하지만 이들의 앨범들을 굳이 찾아들을 정도의 청자들이라면 이 정도 재즈퓨전이 안 꽂히면 어쩌지 하는 건 괜한 걱정에 가깝긴 하겠다. 그 즈음 나온 재즈퓨전 중에서는 단연 손꼽힐 만하다고 생각한다. 특이하게 Inside Out 오리지널보다 조금 늦게 나온 일본반에 Bill Berends가 그린 오리지널 커버가 쓰였고, 일본반 보너스트랙인 ‘Excelsior!’가 꽤 직선적이고 괜찮은 헤비 프로그를 보여주므로 웬만하면 그편을 권한다.

[Inside Out, 1998]

Der Blutharsch “When Did Wonderland End?”

Albin Julius가 죽었다. Der Blutharsch가 가장 뛰어난 네오포크 밴드라고 한다면 고개가 갸웃거려지겠지만 그래도 장르를 선도했던 가장 뛰어난 부류들의 하나였다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고, 장르의 가장 대표적인 이름들 가운데에서는 그래도 가장 ‘록 밴드’의 편성에 가까우면서 빡센(가장 ‘martial’했다는 뜻이다) 음악을 들려준 사례로 칭한다면 그래도 수긍할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니 Albin의 사망은 아마도 이 장르가 생명력을 많이 잃었다는 혹자들의 최근 평가들에 엄청난 신빙성을 제공할 것이다. 각설하고.

물론 이 ‘밴드’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 Albin Julius의 원맨 인더스트리얼 프로젝트(아니면 누군가와의 듀오)에 가까웠을 이 밴드가 진짜로 ‘밴드’의 편성을 제대로 갖춘 것은 이 앨범부터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전의 스타일과 많이 달라졌던 것은 아니고, 여전히 묵직한 일렉트로닉스를 위시한 기존의 스타일에 Bain Wolfkind 특유의 적당히 도발적인 크루너 보컬과 기타 연주가 더해졌다고 하는 게 이해하기 편할 것이다.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덕분에 Death in June의 ‘Frost Flowers’의 소절이 등장하는 6번 트랙이다. 아무래도 Ennio Morricone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이 장르로서는 보기 드물게 서정이 넘치는 9번도 그렇고, 앨범 마지막의 Adriano Celentano의 ‘La Barca’의 커버에 이르면 내가 지금 듣고 있는 게 무슨 앨범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말하자면 잘 하면 마샬 인더스트리얼의 거물 정도로 끝날 수 있었던 Der Blutharsch를 네오포크의 거물로까지 끌어올린 한 장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스타일의 호오를 떠나서 이만큼 곡들 자체의 매력이 뚜렷한 네오포크 앨범은 별로 없기도 하고, 결국은 메탈바보였던 어느 막귀의 소유자에게 새로운 장르의 맛을 보여준 앨범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한 시대가 그렇게 저문 셈이다.

[WKN,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