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r Blutharsch And The Infinite Church Of The Leading Hand “Wish I Weren’t Here”

derblutharsch2019.jpg(아직 안 끝났지만)바쁜 한 해기도 했고 사실 (그리 신나지는 않은)로큰롤 밴드가 되어버린 뒤에는 어쨌든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감이 없잖았던 Der Blutharsch인데 그래도 해가 거의 다 가도록 신작이 금년에 나왔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는 건 스스로 생각해도 사실 의외다. 이런 류의 얘기에서 복기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굳이 이유를 찾아본다면 이제는 네오포크에서 많이 엇나가버린 밴드의 스타일도 한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뭐 몇 없는 네오포크 매체들이라지만 언제부턴가 Der Blutharsch의 이름이 주로 등장하는 건 보통은 사이키델릭 록 웹진들이었다. 사이키 밴드 프론트맨 Albin Julius는 아직까지도 별로 적응되는 모습은 아니다.

그래도 앨범은 꽤 흥미롭다. “Sucht & Ordnung”이 크라우트록 식 사이키델리아였다면 그보다는 좀 더 연극적이고, 신서사이저의 역할은 여전하지만 근작들보다는 좀 더 보컬에 무게가 실린 스타일이다. 그래서인지 사실 크라우트록보다는 Spacemen 3 생각이 나지만… 뭐 밴드가 FX먹인 기타를 쓰는 게 처음도 아니다 보니 그렇게 얘기하는 건 좀 과하다 싶기도 하다. 앨범에서 가장 빛나는 곡이 역시 Bain Wolfkind의 기타가 돋보이는 ‘Make me See the Light’라는 것도 그렇고. 하지만 ‘Just Because I Can’의 Velvet Underground스러움은 내가 지금 듣는 게 Der Blutharsch 맞나 하는 생각도 들도록 한다. 하긴 그런 어리둥절함도 이젠 꽤 오래된 얘기기는 하구나.

[WKN, 2019]

Killer Fox “Orgasm of Death”

killerfox1990.jpg이 인적 없는 블로그에서도 그래도 조회수를 기준으로 인기 게시물을 뽑는다면 최상위권에는 Metal Enterprises의 주옥 같은 발매작들이 포진한다(이 대목에서 대체 무슨 생각으로 찾아오는 분들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뭐 하긴 음원을 올리는 블로그도 아닌데 굳이 찾아 들어보지 않는다면야 소개하는 앨범이 아무리 구린들 그 구림을 경험할 수 없으니 가능한 결과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구림의 방식이 아예 범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구석이 있는 레이블이므로 별 거 없는 소개글이나마 재미있게 다가왔을 수도 있었겠군 싶기도 하다. 뭐 그 앨범들을 돈주고 산 입장에서는 전혀 재미있는 앨범들이 아니었지만, 누구나 저마다의 입장은 있기 마련이긴 하다. 각설하고.

Metal Enterprises는 1986년, 미국 밴드 Killer ‘Foxx’의 유일작 “The Night”를 갑자기 Killer ‘Fox’라는 밴드의 “Going Under”라는 앨범으로 바꿔서 재발매한 뒤, 1990년에는 정체도 알 수 없는 이런저런 이들을 끌어들여 Killer Fox라는 이름으로 (물론 Killer Foxx와는 아무 상관없이)새로운 앨범을 녹음했다. 그게 바로 이 “Orgasm of Death”인데, 이렇게 나온 앨범이 당연히 멀쩡할 리 없겠지만 이상한 것도 정도가 있지 앨범에 멀쩡한 구석이 하나도 없다면 그것도 엄청난 개성이 된다. 보코더를 이용한 괴상한 나레이션을 듣다 보면 저가형 Voivod를 의도했나 싶기도 하지만 이 곡이고 저 곡이고 할 거 없이 죄다 실소가 터져나오니 기가 막힌다. 의외로 멀쩡한 코러스를 갖고 있는(하지만 코러스 말고는 역시 모든 게 이상한) ‘Running Blade’를 추천…할 수는 없겠구나 차마.

[Metal Enterprises, 1990]

Wigrid “Entfremdungsmoment”

wigrid2019.jpgWigrid를 거물급 밴드였다고 한다면 그건 솔직히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No Colours에서 나왔던 거물이 되고 싶었으나 실패한 많은 프로젝트들 중에서는 위쪽에 둘 수 있을 만한 사례라고 생각한다. 물론 Burzum의 수많은 카피 밴드 중 하나라고 해도 납득될 스타일, 하지만 Burzum보다는 확실히 좀 더 지루한 리프, 그럼에도 분명히 기억에 남는 분위기를 귀에 박아넣는 능력 덕분에 호오는 그 번듯한 솜씨에 비해서는 확실히 좀 더 갈려 보인다. ‘디프레시브’의 조금은 방계에 가까운 뿌리, 라는 사람도 있고, 지루하고 맹숭하다는 사람도 있다. 어쨌건 No Colours라면 일단 사고 보던 시절이 있었던 이에게는 그래도 애착이 있다.

“Entfremdungsmoment”는 “Hoffnungstod”의 Burzum 데드카피와 “Die Asche Eines Lebens”의 좀 더 정통적이고 달리는(물론 상대적인 얘기지만) 스타일을 절충한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적당히 펑크적인 리프와 템포는 후자에 가깝지만 신경질적인 느낌은 좀 덜하고, ‘Lebenserffahrang’같은 앰비언트에 가까운 트랙은 “Filosofem”을 쉽게 연상시킨다. 물론 시간이 흘러서인지 음질은 – ‘모던’하다는 느낌은 아니지만 – 꽤 훌륭한 편이다. 일단 드럼머신을 이용하지 않은 Wigrid의 첫 앨범이다 보니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번듯하지만 조금은 너무 익숙한 스타일을 익숙지 않은 수준의 음질로 듣다보니 일단 기억에는 잘 남는 편이다. 물론 이런 류의 밴드에서 이건 쉽지 않은 미덕이다. 좋다는 얘기다.

[Bleeding Heart Nihilist Productions, 2019]

Marduk “Infernal Eternal”

infernaleternal.jpg벌써 지난 주의 일이 되었지만 Marduk 내한공연은 예상 이상으로 멋진 시간이었다. 내가 무슨 통뼈라고 Marduk 공연을 직접 볼 일도 물론 없었거니와 “Plague Angel” 이후의 앨범들은 굳이 잘 챙겨듣지도 않았으니 기대가 없는 것도 하긴 당연했을지도…라는 게 내 생각이지만 그래도 Marduk이라고 프리즘 홀을 그만큼 채우는 공연도 되게 오랫만이었다(내가 가는 공연이란 게 뭐 거기서 거기이다보니). Mortuus가 부르는 밴드의 클래식 레퍼토리들을 들어보는 것도 물론 인상적이었다. 솔직히 내가(물론 영상으로) 기억하는 Marduk은 Legion이 마이크를 잡는 모습이었으니.

그런 의미에서 아무래도 보통 기억하는 Marduk의 라이브는 “Live in Germania”지만, “Panzer Division Marduk” 이전의 라이브이다 보니 직접적인 비교대상은 “Infernal Eternal”이다. 고르진 않더라도 “Dark Endless”부터 “Panzer Division Marduk”까지 고루 담고 있는 라이브기도 하고, 블랙메탈 라이브앨범 치고는 떨어지는 음질도 아니다. Legion이 꽤 뜬금없는 타이밍에 떼창을 유도하는 모습이 좀 괴이하기는 한데 이 앨범이 맘에 들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 애매한 타이밍이 등장하기 전에 이미 오디오를 꺼버렸을 가능성이 높으니 큰 단점은 아니라 본다. 하긴 이 타이밍에 Marduk 라이브앨범 얘기를 하는데 나쁜 얘기가 나오겠는가?

[Osmose, 2000]

 

Arallu “En Olam”

enolam.jpgArallu는 Melechesh나 Orphaned Land와 더불어 그래도 이스라엘 메탈 밴드들 가운데에서는 비교적 잘 알려진 사례가 아닌가 싶은데 일단 요새는 Orphaned Land가 워낙 큰형님이 돼버렸으므로 같이 비교하기 좀 머쓱해지기도 했고… 나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내 주변에서는 딱히 이들을 아는 이를 찾기가 쉽지 않다. 블랙메탈 밴드한테 뭘 기대하는 거냐고 한다면 맞는 얘기긴 한데 그래도 Melechesh만큼 오래 됐고 딱히 구린 앨범을 낸 적이 없었던 걸 고려하면 조금은 저평가됐다고 할 수 있을지도. 그런데 말하고 보니 바이킹메탈 말고는 포크 바이브를 진하게 풍기는 블랙메탈 밴드가 좋은 반응을 얻은 적이 있었나 생각하면 중동풍 사운드를 연주하는 밴드에게는 헛물켜는 얘기일 수도 있겠다. 각설하고.

Melechesh 등과 비교되는 이들의 개성이라면 특유의 ‘중동풍’ 외에도 war-metal식 전개를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인데, 그렇다고 Blasphemy 같은 밴드들에 비교할 만큼 거친 사운드와는 거리가 멀고, Immortal을 연상케 하는 직선적인 전개에 데스메탈의 그림자 짙은 리프(Immolation이나 Angelcorpse를 그나마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를 많이 사용하는 정도로 얘기하는 게 더 적확할 듯하다. “En Olam”도 마찬가지인데, ‘Devil’s Child’같은 곡이 그렇듯 전작들에 비해서는 파워메탈의 색채나 어쿠스틱 소품 등의 등장 빈도가 높은 편이고, ‘Spells’ 같은 곡은 중동풍이라기보다는 Rotting Christ의 스타일에 더 유사한 편이기 때문에, 그간의 앨범들에 비해서는 좀 더 다양한 사운드를 시도한 앨범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Trial by Slaves’ 같은 전작들이었다면 확실히 이색적이었을 곡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 걸 보면 그런 시도는 꽤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멋진 앨범이다.

[Satanath,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