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rvus Corax “The Atavistic Triad”

theatavistictriad.jpgDark Symphonies에 대한 내 주변의 일반적인 평가는 곧잘 하지만 또 즐겨 듣기에는 좀 부족한 수준의 미국 밴드들을 소개하는 미국 레이블이라는 것이었다. 뭐 Maudlin of the Well 같은 예외를 뺀다면 나도 그런 평가에 동의하는 편인데, 아닌 게 아니라 언제부턴가 본격 재발매 레이블로 거듭난 이들의 카탈로그를 보면 자기들도 스스로의 안목을 마냥 믿을 수는 없었나보다. Corvus Corax의 이 유일작도 그런 수준의 평가를 벗어날 수 없었던 앨범의 하나였다. 나쁘잖은 심포닉 블랙메탈이지만 그렇다고 주목받을 만큼 와닿는 부분은 없었다. 일단 블랙메탈이지만 몰아치기보다는 둠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데 더 관심이 많은 밴드였다는 점도 불리했을지도 모른다. 2000년이었다.

그렇지만 다시 뜯어보면 앨범은 또 달리 들린다. 밴드는 화려한 맛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그 시기 비슷한 부류의 다른 밴드들보다 확실히 어두운 분위기의 음악을 연주했고, 전형적인 블랙메탈보다는 여유 있으면서도 드라마틱한 전개를 가져가는 데 능해 보였다. 앨범 전반에 흐르는 포크 바이브도 꽤 뚜렷한 편이고, ‘Son of the Earth’ 같은 곡은 심포닉블랙의 건반보다는 리프 뒤에서 자욱한 앰비언스를 흩뿌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고 보면 ‘cascadian’ 블랙메탈의 많은 모습들을 앞서 보여준 앨범이었던 셈이다. 물론 discogs에서 7유로에 팔리고 있는 걸 보니 나만 그런가 싶기는 한데… 그래도 적어도 ‘Son of the Earth’ 하나만큼은 시간을 들일 가치가 분명하다.

[Dark Symphonies, 2000]

Ostara “Kingdom Gone”

kingdomgone.jpgOstara는 사실 지금 얘기되는 것보다는 좀 더 좋은 대접을 받을 만한 밴드라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이 밴드 특유의 팝적인 면모를 기꺼워하지 않았던 이들이 많았는지 이들에 대한 세평은 내 생각만큼은 아닌 것 같다. 하긴 이렇게 말하면 네오포크 밴드를 두고 기대만큼 안 팔려서 아쉽다는 얘기를 하는 모양인지라 좀 그렇긴 한데 난 이것보다는 더 장사가 될 줄 알았다(판장사 할 팔자는 아닌 셈이다). Strength Through Joy가 그리 팝적인 밴드가 아니었으므로 이런 면모가 실망스럽게 비춰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KAPO!의 음악을 생각하면 이게 그리 예상 못 할 만한 음악은 그때나 지금이나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네오포크-팝(또는 혹자들의 표현으로 ‘pagan pop’)’밴드의 면모가 가장 잘 드러난 앨범은 “Secret Homeland”이겠지만 그래도 그런 스타일의 정점으로 딱 하나만을 고른다면 이 앨범의 ‘The Trees March North’다. Ostara보다는 후대의 밴드들이 더 잘 써먹는 요소지만 낭만성 짙은 첼로와 정말 ‘건강한’ 느낌의 코러스, 간혹 Johnny Marr 생각도 나는 기타 등은 다른 네오포크 밴드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모습들이다. 보통 기억하는 Ostara의 모습은 사실 이 곡보다는 ‘Sword of Reverie’가 낫겠지만 밴드의 팝적인 모습을 기꺼워했던 이들이라면 이만한 곡이 있었을까 싶다. 딱히 버릴 만한 곡은 없지만 이 한 곡 만으로도 이 앨범은 가치가 있다…는 게 사견. 뭔가 시원해 뵈는 바람이 부는 봄날에 어울리는 곡이 아닐까 한번 생각해 본다. 나가 놀기만 하면 되겠다만 하긴 그게 안 되고 있으니 컴퓨터 앞에 있는 걸지도. 그러니까 이 글을 보신 분이라면 지금이라도 집에만 있지 말고 바람 한 번 쐬고 오심을 권해본다. 얘기가 왜 이렇게 흐르냐…

[Eis & Licht, 2002]

 

Usurper “Lords of the Permafrost”

usurper2019.jpg90년대 미국 블랙메탈을 생각하면 사실 그리 좋은 기억이 별로 없는데 이유를 굳이 찾는다면 첫째로는 암만 용쓰더라도 그 시절 북유럽의 기린아들을 따라잡긴 쉽지 않았다는 점이 있겠고, 둘째로는 미국의 밴드들은 비슷한 시기의 유럽의 밴드들에 비해서는 확실히 데스메탈과의 구별이 조금은 모호한 음악을 했다…는 점이 있겠다(후자는 물론 사견에 가깝다). Usurper도 후자처럼 ‘모호한’ 스탠스를 취한 부류에 속하던 밴드인데, 그래도 개성을 찾는다면 이들이 참고한 데스메탈이 플로리다 데스가 아니라 Celtic Frost 류의 음악이었다는 것이다. 하긴 블랙메탈을 의식한 음악을 하면서 Celtic Frost를 참고하지 않은 밴드가 있기는 할까 싶지만 그만큼 유럽적인 구석이 있는 사운드를 시도한 밴드였다는 말을 하려는 게 이 서두의 의도였으니 이 얘기는 이쯤에서 넘어가기로 한다. 각설하고.

이 14년만의 재결성작도 기존의 스타일과 사실 차이는 거의 없다. 굳이 집어낸다면 예전보다는 Celtic Frost보다 ‘전형적인’ 류의 블랙스래쉬를 의식한 듯한 펑크 연주나 슬럿지풍의 연주가 많아졌다는 점인데, 둘 다 원래 이 밴드에서 볼 수 없었던 모습은 아닌 만큼 극적인 변화라고 하기는 좀 어렵겠다. 다만 종전보다 좀 더 스타일의 진폭은 넓어졌다는 느낌이 있는데, 극적인 맛으로 승부하는 밴드는 아니지만 곡이 좀 더 드라마틱해진 부분이 있다. ‘Gargoyle’의 댄서블한 비트나 ‘Beyond the Walls of Ice’의 슬럿지 리프는 한 앨범에서 담아내기엔 쉽지 않은 모습들이지만, 적어도 이 앨범에서 그리 어색하지는 않다. 하긴 Rick Scythe는 이미 “Necronemesis”에서 충분히 그루브한 리프를 연주했으니 연습은 충분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무난하면서도 확실히 반가운 앨범이라고 할 수 있다. 14년의 값은 확실히 하는 편.

[Soulseller, 2019]

Arthur Brown “Dance with Arthur Brown”

dancewitharthurbrown.jpg평범한 메탈헤드와 메탈바보의 경계선상에 있는 이들이 부딪히는 딱히 중요치 않은 논쟁거리들 중 하나는 과연 콥스페인팅을 처음으로 시도한 뮤지션은 누구이냐는 것이었다. 이런 논쟁들의 거의 대부분은 누구의 라이브러리가 가장 깊고도 넓느냐를 견주는 (역시 딱히 중요치 않은)경쟁으로 환원되기 마련이고, 콥스페인트에 대한 논쟁도 예외는 아니었다. 얼굴에 회칠이라면 80년대부터 Mayhem이나 Celtic Frost가 했다고 하는 이가 있으면, 곧 무서워 보이질 않아서 그렇지 칠이라면 뒤지지 않는다는 Kiss나 King Diamond를 들먹이는 이가 등장하고, 무섭다기보다는 지저분해 보이는 데 가까워서 그렇지 어쨌든 ‘시체화장’임은 분명해 보였던 Misfits나 Alice Cooper의 얘기가 뒤를 잇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다. 여기에 조금 경쟁에 불이 붙는다면 등장하는 것이 Arthur Brown이고, 조금 과하게 올라가면 Screamin’ Jay Hawkins까지 등장하기도 한다. 그만큼, 메탈 뮤지션은 아니었지만 Arthur Brown은 메탈 팬들에게 친숙한 구석이 있는 뮤지션이었다. 일단 본인 목소리부터가 웬만한 메탈 보컬리스트들을 주눅들게 할 만큼 시원시원한데다, 지금 봐도 확실히 맛이 가 보이는 가사나 퍼포먼스가 눈길을 끈다.

그런 만큼 “Dance”는 흔해빠진 스타일이야 아니었지만 이 아저씨 왜 이렇게 됐냐는 우려를 불러올 만한 앨범이었다. Keith Tippet이나 Roger Bain 같은 양반들도 등장한 앨범이었으니 대략 청자들이 예상하는 견적이 있었는데, Brown의 커리어에서 다시 없을 정도로 소울/블루스 느낌이 진하게 묻어나는 앨범에 황당함을 감출 수는 없었다. Mann & Weil에게 곡을 맡긴 ‘We’ve Got to Get Out of This Place’이 황당함의 정점일 텐데, 이걸 앨범의 오프너로 써먹었으니 Kingdom Come을 듣던 양반들이 무슨 생각을 했을지는 짐작에 맡긴다. 갓 오브 헬파이어가 장화에 청청패션으로 소울/블루스를 부른 덕분인지 앨범의 판매고는 과히 좋지 않았고, Arthur Brown의 위키피디아 페이지는 무려 Brown의 첫 솔로 앨범이었던 이 앨범은 아예 페이지조차 개설하지 않고 있다. 난 매번 화장하고 불이나 뿜어야 한단 말이냐 하는 Brown의 한탄이 들리는 듯하지만 보통 당혹감에 취한 청자들은 그런 목소리에는 관심이 없기 마련이고, Brown이 나름 가다듬고 보여주었던 소울/블루스 싱어로서의 면모는 그렇게 묻혔다. 이후로도 Arthur Brown은 현재까지 계속 활동을 이어 나가지만, 이 시절의 팝적이면서도 소울풀한 스타일은 다시는 전면에 나서지 못한다. 세평은 아니지만, 맥주 마실 때 이 앨범을 곧잘 듣는 나로서는 아쉬움이 없지 않은데, 나 말고도 그런 사람이 또 있었으면 좋겠다.

[Gull, 1974]

Fearless Iranians from Hell “Fearless Iranians from Hell”

fifhdebut.jpg저 밴드명을 보고 두려움 없는 무슬림 지하디스트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고 바야흐로 시절은 1986년, 뭐 미국의 패권주의에 불만이 많았을 것으로 예상되는 하드코어 밴드. 하긴 당장 이 양반들의 3집 이름이 “Foolish Americans”이니 그런 오해를 하는 자체가 밴드에 대한 몰이해일지도. 그렇지만 활동 당시 인터뷰 안 하기로 유명한 밴드였던만큼 밴드가 떨쳤던 유명세에 비한다면 알려진 건 생각보다 그리 많은 편은 아니다. 그런 걸 생각하면 도발적이었던 모양새와는 별개로 밴드는 활발한 활동(음악이든 정치든)에는 그리 관심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말하자면 결국은 이들의 정치성이라는 것도 계급의식보다는 나는 펑크 밴드라는 자의식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정도의 것에 가깝지 않았으려나, 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사족이 길긴 했는데, 확실한 건 정치성을 떠나서 이 즈음 나온 많은 EP들 가운데 이 데뷔 7인치만큼 인상적인 앨범은 정말 별로 없(는 것 같)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이 즈음의 장르의 선두주자들에 비할 만하다는 건 또 아니고, 이 앨범을 구한 사람은 8분짜리 EP에 제 값을 다 치뤘다는 얘기니 기억에 없기도 쉽지 않겠지만, 이만큼 심플한 패턴으로 확실한 유머를 담아낸 예도 따지고 보면 그리 많은 편은 아니다. Henry Rollins풍 보컬에 기타 솔로잉도 있다 보니 스래쉬메탈로 분류되는 경우도 많은데, 사실 이 앨범 정도면 스래쉬라기보다는 그냥 미드템포 하드코어 펑크 정도로 얘기하는 게 더 맞지 않을까 싶다. 물론 메탈 팬들이 더 좋아할 만한 펑크기는 하다. 충분히 재미있기도 하고.

[Boner,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