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rcófago “The Worst”

브라질 메탈 역사의 중요한 순간을 써내려간 거물 밴드 중 하나의 역사를 끝장내버린 것으로 잘 알려진 이 앨범은 덕분에 실제로 들어보기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긴 앨범 커버를 보면 그런 평가를 몰랐더라도 과연 이 앨범에 손이 갔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우리의 Greyhaze 레코드가 오리지널 커버를 바꾸자고 결심한 건 그래서였으려나? (왼쪽의 커버는 Greyhaze의 재발매 버전이다)하지만 바꾼 커버와 오리지널 커버의 차이점은 글씨 폰트와 저 뭔가 Oliver Hartmann 닮은 대머리 아저씨 사진을 찍은 앵글뿐이니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건가 싶다. 각설하고.

밴드의 앨범들 중 가장 전형적인 데스메탈에 가까웠던 “Hate” 다음 앨범인 만큼 기본적으로는 Sarcófago식 데스메탈을 담고 있는 앨범…이지만, 일단 주로 미드템포로 끌고 나가는 앨범인 만큼 전작들에 비해서는 확실히 힘이 빠져 보인다. 그걸 시절이 1996년이니만큼 그루브(!)로 해결하려 했으려나? 그나마 ‘Plunged in Blood’에서 보여주는 리듬감은 괜찮은 편이지만(일단 빠른 곡이기도 하고), 괜찮은 스래쉬 리프를 당혹스럽게 그루브 메탈식 전개로 연결하는 ‘Army of the Damned’는 이 앨범이 어째서 지금의 평가를 얻게 되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실 ‘Shave Your Heads’ 같은 곡은 꽤 괜찮기 때문에 이걸 똥반이라 한다면 밴드로서는 좀 억울하겠지만, 아무래도 Sarcófago의 앨범을 알아서 돈 주고 살 사람이라면 이런 걸 기대했을 리 없어 보인다. 그런 음악을 생각하면 저 앨범명은 사실은 밴드의 자아비판인가 하는 생각도 조금은 든다. 물론 본전 생각 나서 하는 얘기다.

어쨌든 괜찮은 곡들도 있기 때문에 중고로 나온다면 구해볼 만 하겠지만 다른 앨범들을 제쳐두고 굳이 찾아들을 필요까지는 아마도 없을 만한 앨범.

[Cogumelo, 1996]

Yes “Mirrored to the Sky”

Alan White까지 떠난 뒤에도 Yes는 이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신작을 내놓았다. 하긴 이제 밴드의 ‘클래식’ 멤버는 Steve Howe 뿐이고, Howe를 제외하면 80년대나마 밴드의 ‘한창 시절’ 맛을 본 멤버는 Geoff Downes 뿐이다. 이 두 베테랑이 나머지 젊은이들(이래봐야 물론 정말 젊은이는 아니다만)을 이끌고 명맥을 이어 나가는 이 밴드가 그 한창 시절의 에너지를 유지할 거라고 볼 수는 없겠다.

그러니까 너무 삐딱하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이 앨범은 생각보다 더 괜찮게 들린다. 물론 Billy Sherwood가 여전히 한 자리를 꿰차고 있다는 사실이 못내 불만스럽지만 멤버들 각자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다는 점도 분명해 보인다. Alan White의 빈자리를 채운 Jay Schellen의 연주도 (Yes의 드러머치고는)화려하다기엔 좀 그렇지만 충분히 탄탄하게 들린다. Billy Sherwood마저도 그가 참여한 Yes의 어느 앨범에서보다도 나은 연주를 들려준다. 특히나 Steve Howe가 역동적인 리듬에 얹혀진 오케스트레이션을 뒤로 하고 발군의 연주를 보여주는 ‘Mirror to the Sky’는 적어도 ‘Machine Messiah’ 시절의 Yes를 떠올리게 하는 면이 있다. 건반이 Geoff Downes이다 보니 그런 것도 있긴 하겠다.

Jon Davidson이 들어온 이후의 앨범들 중에서는 개인적으로는 가장 좋게 들린다. 실망스러웠던 “Heaven & Earth”와 Chris Squire의 빈자리를 감출 수 없었던 “The Quest”에 비한다면 충분히 만족스럽다. 사실 ‘Mirror to the Sky’ 한 곡만으로도 가치는 충분할 것이다.

[Inside Out, 2023]

Isenordal “Shores of Mourning”

커버만 봐서는 풍랑을 헤쳐나가는 모습이 바이킹메탈인가 싶기도 하지만 정신차리고 보면 갤리선도 아니고 범선이니 별 상관없겠구나 하는 예상을 던져주는 Isenordal의 데뷔작. Isenordal은 한 5~6년 전쯤 괜찮은 미국 둠-데스 정도로 넷상 가끔 이름을 마주할 수 있던 밴드였는데, 두 장의 앨범을 내고 Prophecy의 로스터에 들어가서 이제 나름 성공 맛 좀 보나 했지만 정작 Prophecy와 계약한 이후 앨범이 딱히 나오지 않고 있는지라 얘네 대체 뭔가… 하는 의문을 던져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나름 밴드의 이름을 알렸던 이 데뷔작을 이제서야 구하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Prophecy에서 2019년에 제대로 찍어내기 이전에는 테이프로만 돌아다니던 앨범이기도 하고.

metal-archives에서는 Pagan Black/Doom Metal/Neofolk라는 식으로 장르를 설명하고 있지만 사실 네오포크의 기운은 거의 느껴지지 않고, 그보다는 ‘cascadian’ 블랙메탈 중 신서사이저를 좀 더 화려하게 사용하는 부류의 스타일에 둠 메탈의 모습을 더한 정도의 음악을 보여주는 편이다. 그러니까 저 ‘pagan’이란 설명이 빵점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저 레떼르 붙은 앨범에 보통 기대하는 류와는 차이가 있는 편이다. ‘Pyres at Nightfall’처럼 Novembers Doom이나 소시적의 Paradise Lost를 떠올리게 하는 도입부에서 때로는 Wolves in the Throne Room류의 블랙메탈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자면 그냥 블랙메탈의 기운이 강한 둠-데스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실 많은 얘기 필요 없이 블랙메탈이 좀 섞이긴 했지만(특히나 ‘A Gallows Prayer’) 그냥 드라마틱한 구성에 강점이 있는 둠-데스 밴드라고 하는 게 나로서는 가장 정확해 보인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결국 Prophecy에서 나온 블랙메탈 기운 강한 웰메이드 둠-데스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Prophecy가 여전히 이 장르의 명가 중 명가라는 점만큼은 분명히 보여준다. 이러니까 그놈의 멤버십을 아직도 끊질 못한다.

[Self-financed, 2017]

Saturnus “The Storm Within”

Saturnus의 신작. Prophecy의 Grand Supporter 멤버십을 가입하면 좋은 점은 이렇게 Prophecy의 발매작을 가장 비싼 버전으로 공식 발매일보다 먼저 받아볼 수 있다는 점이고, 나쁜 점은 매달 정액으로 나가는 월회비가 유로화가 껑충 뛰어오르는 시절에는 대단히 뼈아프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요새처럼 유로 환율이 1400원대 위에서 계속 놀고 있는 시절에서 본인은 아주 곤란한 상황이라는 얘기다. 본의 아…니라고야 못하겠지만 예상 이상으로 과소비의 화신이 돼버린지라 자중해야겠지만 매달 꼬박꼬박 빠져나가는 월회비의 뼈아픔을 생각하면 앨범에 대한 기대는 한층 더해진다. 물론 딱히 실패작을 낸 적이 없었던 밴드이기도 하다.

앨범은 딱 기대만큼의 음악을 담고 있다. 멤버가 조금 바뀌기는 했지만 사실 데뷔작 시절 멤버라고는 보컬과 베이스밖에 남지 않은 이 밴드가 멤버 변경으로 스타일이 바뀔 밴드는 아니고, 밴드 특유의 서정을 강조한(그리고 밝은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결코 어둡지는 않은) ‘웰메이드’ 둠메탈 스타일의 가장 기여도 높은 인물 중 하나는 프로듀서인 Flemming Rasmussen일 것이므로 이 밴드의 노선은 여전히 공고하다. 오히려 프로그 터치를 놓지 못했던 “Martyre”나 “Veroika Decides to Die” 같은 앨범에 비해서는 이 앨범이 좀 더 전형적인 전개에 가까워 보인다. ‘Even Tide’ 같은 보컬 하모니와 멜로디만으로 승부하는 발라드 같은 곡은 둠-데스 밴드들도 어느 정도는 프로그 터치를 보통 머금곤 하는 요새에는 사실 별로 본 적이 없다.

이전에 Saturnus를 좋게 들었다면 당연히 만족할 수 있을 앨범…인데, 사실 퓨너럴 둠도 아닌 둠-데스를 아직껏 듣는 이라면 Saturnus를 안 좋게 들을 수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일단 이 앨범으로 이번 달 월회비는 아깝…지 않았다면 좀 거짓말이지만 확실히 본전 생각은 덜하다. ‘Breathe New Life’를 들으면서 그래도 그 때 들을 게 참 많았어… 하는 생각이 들어서 더 그럴 수도 있겠다. 멋진 앨범이다.

[Prophecy, 2023]

Fair Warning “Live and More”

몰랐는데 Helge Engelke가 4월에 대장암 수술 합병증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사실 한창 시절 돌아다니던 광고문구마냥 독일이 낳은 초일류 연주자냐면 아무래도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다른 Uli Jon Roth 짝퉁 기타리스트들과는 분명히 구별될 정도의 개성과 기량은 충분히 보여줬을 것이다. 독일 하드록/헤비메탈 기타리스트가 Uli Jon Roth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도 이상할 일이다(그랬다면 사실 그건 실력보다는 인성파탄의 인증에 가까울 것이다). 늦었지만 고인의 명복을 빈다.

그런 의미에서 간만에 한 장을 듣는다면 아무래도 Helge의 본진일 Fair Warning의 가장 빛나는 순간이 망라된 이 앨범이 아닐까? 이름에 Warning 들어간 밴드들 중에서는 첫손가락이야 절대 안 되지만 그 다음 정도는 충분할 커리어(물론 1등은 압도적인 차이로 Fates Warning에게 돌아간다)의 이 밴드가 X반을 낸 적은 한 번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멜로딕 하드록이라는 장르의 정수가 담겨 있는 건 데뷔작부터 “Go!”까지의 세 장일 것이고, 그런 만큼 “Go!” 이후 나온 이 라이브야말로 Helge Engelke의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시절을 보여줄 것이다. 애초에 일본 말고 다른 곳에서는 이 장르의 생명력이 사그라진 시절이었으니 일본 라이브라는 것도 장점에 가깝다.

발라드가 많다고 볼멘소리를 하는 이들도 있지만 적당한 드라이브감에 직관적이고 분명한 멜로디를 얹어 단숨에 때려박아넣는 모습을 보자면 이내 그런 얘기도 들어간다. Uli Jon Roth마냥 하이프렛 바이올린 따라잡기 놀이도 보여주는 솔로잉도 화려하긴 하지만 기교보다는 화려한 멜로디 덕에 연주까지 더욱 화려하게 느껴진다. ‘Angels of Heaven’이나 ‘Save Me’ 같은 곡은 뭐 차은우마냥 잘 생긴 보컬이 부른다면 케이팝 가요방송 무대에 오르더라도 꽤 반응이 있지 않을까? 물론 포스트의 절반이 블랙메탈로 점철된 블로그 굴리는 아재의 생각이니 적당히 이해하고 넘어가자.

[Zero,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