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적 장애이론

비판적 장애이론이라는 말은 생소하다. 독자가 문외한인 것도 있겠지만 당장 ‘비판적 장애이론’으로 구글링을 해도 출판사에서 이 책을 내놓았다는 게시물 외에는 언급 자체를 찾아보기 어렵다. 출판사(겸 연구소)의 소개에 의하면 서양에서 아주 뜨거운 학문 분야로서 푸코, 들뢰즈, 퀴어 이론, 인종 이론, 페미니즘 이론 등을 전유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본문만 치면 고작 81페이지에 불과한 이 한 권으로 방대한 분야를 건드리는 건 불가능할 것이고, 문외한으로서 극도로 간략화된 개론서를 본다는 느낌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

그럼 개론서니까 용어의 의미부터 살펴보면 장애는 ‘disability’를 의미하고, 저자에 의하면 이 이론의 과제는 장애를 문화적, 역사적, 관계적, 사회적, 정치적 현상으로 고찰하고 그러한 관점에서 분석하는 것인데, 이는 ‘주제 중심의 연구 영역’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방법론에 가깝고, 이 분야의 이론가들은 자신의 연구를 통해 활동주의를 지행하며 학술장에 제한하려 하지 않는다고 한다. 게다가 저 ‘장애’도 반드시 신체적 장애에 한하는 것도 아니다. 조앤 W. 스콧은 장애를 ‘특정 개인이 타고난 것이라기보다 개인에게 귀속된 것이되, 개인에게 병리적이거나 억압적으로 작용하는 일련의 복합적 특징들’로 서술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장애라는 용어를 사용할지언정 그 실질적 의미는 권력의 반대편에서, 권력의 작용을 받아내는 억압의 대상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비판적 장애 이론이 다양한 이론들을 전유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처럼 보이고, 억압이라는 현상에 대한 분석은 많은 겨우 동시에 그 현상에 대한 기존의 장애 이론들의 분석을 수반하니만큼 시끌시끌한 학제일 수밖에 없어 보이고, 그런 비판들에 대해서는 애초에 장애가 무엇이었는지를, 장애인의 삶에 있어서의 신체적 차원의 문제가 있다는 점을(즉, 사회가 일으키는 문제가 전부가 아니다) 지적하는 공격도 다시금 등장한다. 그렇다면 결국은 파편적인 활동들보다는 다양한 이론들이 함께하기 위한 공동전선의 구축 전략이 이 ‘뜨거운 학문 분야’의 앞으로의 과제이지 않을까 싶다. 사실은 이 ‘학문 분야’가 전유하는 다양한 이론들의 공동전선 구축을 위한 분류에 지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개론서를 이렇게 선동적으로 읽는 게 맞는 것인가? 하긴 활동과는 상관없이 책상에서 펜대만 굴리는 사람이니 독해라도 화끈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원래 선무당이 이렇게 용감한 법이다.

[멜린다 C. 홀 저, 오창환 역, 에라스무스]

Buddy Lackey “The Strange Mind of Buddy Lackey”

Devon Graves의 가장 잘 알려진 커리어는 단연 Psychotic Waltz와 Deadsoul Tribe일 텐데 사실 Deadsoul Tribe를 제외하면 Devon Graves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적은 내 기억에는 없었고 항상 Buddy Lackey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그렇지만 이 분을 Buddy Lackey라는 이름을 부르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드니 생각하면 꽤 괴이하다. 뭐 Buddy Lackey보다는 Devon Graves가 메탈 뮤지션의 이름으로는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지만 이유야 알 수 없다.

“The Strange Mind of Buddy Lackey”는 Devon Graves가 Buddy Lackey의 이름으로 낸 (현재까지는)유일한 솔로작인데, Psychotic Waltz의 한창 시절 함께 나온 앨범인지라 이 앨범에서도 Psychotic Waltz의 그림자를 지울 수는 없다. 차이가 있다면 그래도 Psychotic Waltz보다는 이 쪽이 더 간명한 전개를 보여주는 편이라는 정도? 사실 Dream Theater와 방향성이 좀 달랐을 뿐 어디까지나 메탈 밴드였던 Psychotic Waltz에서 보여줄 수 없었던 Buddy Lackey의 프로그레시브 록 취향을 어느 정도 보여주는 앨범이랄 수 있겠다. 그런데 왜 이쪽이 간명하냐 하면 그 레퍼런스가 Jethro Tull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렇다고 해도 어쨌든 이 앨범은 메탈 앨범이고, 저 Jethro Tull스러운 면모가 앨범의 묵직한 분위기를 좀 갉아먹는 감이 없지 않아 보인다는 점이다. 이걸 다양한 색채를 보여준다랄 수도 있겠지만 ‘Let’s Start a War’의 Psychotic Waltz의 앨범에서는 생각하기도 어려울 ‘조금은 유치한’ 리프를 듣자면 듣기 편한데도 조금은 귀에 거슬리는 드문 경험을 맛볼 수 있다. 어찌 보면 Psychotic Waltz와 Devon Graves가 훗날 보여줄 스타일을 교차해서 보여주는 앨범이라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솔직히 Psychotic Waltz의 팬이 아니라면 굳이 구할 필요까진 없어 보인다. 본전 생각 난다는 뜻이다.

[Dream Circle, 1993]

제3의 남자

가슴 아픈 분단의 현대사를 관통하는 한 남자의 격정적 일대기라는 광고문구에서 어느 하나 당기는 구석을 찾아볼 수 없지만 책을 읽게 된 이유를 굳이 짚는다면 첫 번째로는 제목만 봤을 때 그레이엄 그린의 “제3의 사나이”스럽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겠다. 그런 면에서 무작위로 책을 폈을 때 등장한(그러니까 책의 개인적인 첫인상이나 마찬가지일) ‘월출’의 음주 장면은 무척이나 당혹스럽다. 대체 이름이 왜 월출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명동 골목길 지하의 과묵한 바텐더가 음악을 틀어 주는 고급진 바에서 양주를 홀짝이며 여성들의 경계심도 풀어질 것을 기대하면서도 여자와 깊은 관계까지는 만들지 않는다는 무척 007스러운 설정으로 등장하는 사나이는 바에 앉아서 캪틴큐를 마신다. 다음날을 삭제시켜 준다는 그 술 맞다.

물론 ‘월출’은 비중은 무척 높지만 주인공은 아니고, 어쨌든 이 ‘격정적 일대기’에서 담당한 역할이 007스럽긴 하며, 이 책이 관통한다는 분단의 현대사는 6-70년대로 보이는만큼 바에서 혼술하는 남자가 먹는 술이 캪틴큐라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겠고, 고된 현대사 속에서의 일상을 잊자면 캪틴큐만큼 적절할 술도 별로 없을 테니 자연스럽다고 할 수도 있겠다. 결국 거칠게 요약하면 대단할 것까지는 없는, 어떤 의미에서는 시대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을 군상들이 얽혀 있는 이야기이니 우리의 ‘월출’이 먹는 술이 캪틴큐가 아니라 시바스 리갈은 됐어야 했다고 할 이유도 굳이 없어 보인다. 잊을만 하면 우리의 현대사를 소재로 영화를 내놓는 충무로에서 참 영화로 만들기 좋아 보인다는 생각도 든다. 혹시나 해서 찾아보니 역시 작가에게 시나리오 작업까지 시켜서 ‘대한민국 최고의 CF감독’에게 맡겨 영화화한다는 기사도 나온다.

말하자면 작가의 집필의도는 어두운 인간 군상들을 통해 인간의 내면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는 묵직함을 품으면서 동시에 문제적 시대상을 이용해서 재미까지 잡았다는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스러운’ 평가를 받으려는 게 아니었을까 하는 짐작도 들고, 그리 복잡하게 재지 않고 선 굵게 밀어붙이는 가운데 등장하는 장면들이 영화 문외한의 눈으로 보더라도 뭘 보고 이 소설을 영화화하기로 했는지 알 만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리플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캪틴큐 마시는 유사 007보다는 좀 더 ‘간지나는’ 인물이 등장해서 캪틴큐의 충격을 지워주지 않는다면 그 영화를 내가 볼 것 같지는 않다. 일단 ‘월출’이 틈만 나면 입고 나오는 츄리닝부터 벗겨주지 않는다면 나로서는 곤란해 보인다.

그런데… 이 쯤 되면 사실 책의 문제라기보다는 초장부터 캪틴큐에 꽂혀서 계속 그 얘기만 하는 독자의 문제가 더 많아 보인다. 그러니까 문제는 결국 술이다, 술.

[박성신 저, 황금가지]

Asia “Live in Moscow”

Asia의 첫 번째 공식 라이브 앨범? Asia가 그 시절의 걸물들만 모아 놓은 슈퍼밴드인 것도 맞고 제일 잘 나가던 시절에는 차트를 호령…까지는 아니어도 의미있는 성과를 보여준 것도 맞지만 이 밴드의 앨범을 “Astra” 이후에까지 찾아들은 사람은 아마 별로 없으려니 싶다. 그래도 1990년에 무려 모스크바 라이브라니 암만 기세가 꺾였을지언정 Asia가 80년대 서구의 록을 대표하는 밴드들 중 하나로 비춰졌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모스크바에서 라이브를 하거나 말거나 Asia가 한국에 올 리는 만무했고 그러니까 Asia의 공연을 간접체험이라도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90년대 초중반 이 라이브앨범은 반드시 구해야 할 아이템이었다. 물론 이후 이 밴드의 라이브가 사골 우리는 수준으로 계속 나올 줄 알았다면 그렇게 열심히 구할 필요까지는 없었겠지만 그런 걸 알 수 있었다면 아마 돈 모아서 애플 주식부터 사지 않았을까… 뭐 어쨌든 ‘아시아’냐 ‘에이셔’냐 헷갈렸던 이 밴드명 읽는 법을 John Wetton이 공연 서두에 ‘아시아’라고 확실히 밝혀준 앨범이라는 의미도 덧붙여 본다. 앨범의 퀄리티를 떠나서 꽤 추억이 많은 앨범이라는 생각이 든다.

Steve Howe보다는 아무래도 Mandy Meyer에 가까워 보이는 Pat Thrall의 기타 덕분인지 앨범의 곡들은 원곡보다는 좀 더 심플하게 전개되어 있고, 특히 ‘Don’t Cry’나 ‘Sole Survivor’ 같은 초창기의 곡들은 원곡과 꽤 눈에 띄는 차이를 보여주는데, Steve Howe보다 좀 더 헤비한 연주를 보여주는 탓인지 King Crimson의 ‘Starless’ 연주가 들어 있다는 점이 앨범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겠다. 문제라면 그 헤비한 연주를 녹음이 전혀 받쳐주지 못한다는 점인데 특히나 한창 시절의 에너지를 쏙 빼버린 듯한 Geoff Downes의 키보드 연주는 확실히 문제가 있어 보인다. 하긴 Asis 앨범 들으면서 파워 찾는 것도 아니다 싶긴 하지만 이런 스타디움 밴드가 이렇게 빈티를 내서는 좀 그렇지 않은가.

[Cromwell, 1990]

Tony Fredianelli “Breakneck Speed”

아직은 그래도 앨범들을 꾸준히 내놓던 시절이긴 했지만 1993년 즈음이면 Shrapnel에서 나오던 기타 비르투오소들의 앨범들은 네오클래시컬의 전형에서 꽤 벗어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제일 유명한 사례야 Marty Friedman의 “Scenes”일 것이고) Apocrypha도 1990년의 “Area 54” 이후에는 앨범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Tony Fredianelli가 놀고 있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는지 1993년에 갑자기 Tony Fredianelli의 솔로 앨범이 나왔다. 생각해 보면 Toby Knapp의 “Guitar Distortion”도 같은 해에 나왔다. 그러니까 어찌 보면 네오클래시컬 기타 비르투오조들을 계속 예전처럼 소개하기에는 어려워진 시절에 Shrapnel이 나름대로 활로를 찾아보려고 한 시도… 였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별 근거는 없는 얘기다.

그렇게 나온 이 앨범은 역시 Shrapnel의 기존의 기타 인스트루멘탈 앨범들과는 꽤 많이 다른 편이다. 인물이 인물인지라 테크닉 자체는 돋보이긴 하지만 Apocrypha 시절의 그 스타일을 기대할 순 없고, 그보다는 좀 더 스래쉬한데 Apocrypha 시절의 음악을 생각하면 의외일 정도로 ‘모던하게’ 스래쉬한 이 앨범이 취향에 맞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러면서도 ‘Psycho Shemps’의 페달 연주와 ‘Doug’s Doom Circus’의 느릿한(이걸 둠적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연주 등은 이 분이 전형적인 메탈 기타에서는 이미 좀 비껴나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

그래봐야 이후 Third Eye Blind에 합류하는 충격적인 행보까지 예상케 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이 정도면 그래도 문제작 소리를 듣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다른 걸 떠나서 일단 테크닉만큼은 Shrapnel의 이전 앨범들에 비해서도 뒤지지 않는다.

[Shrapnel,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