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본업에 대해 말한다면 실용적인 목적이 있을지언정 어쨌든 글을 쓰는 게 중요한 일을 한다. 여기서 실용적인 목적이 있다 함은 글 자체가 목적은 아니라는 뜻이고, 바꿔 말하면 전업 작가 내지 소위 글쟁이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직업군과는 또 거리가 있다는 뜻이다. 다시 바꿔 말하면 내가 쓰는 글들의 공통점이란 전부 다 더럽게 재미가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보통은 이건 글쓴이 때문이라기보다는 애초에 이 글쓴이가 글에서 다룰 수밖에 없는 소재 탓이라는 식으로 지독한 재미없음을 변명하는 편이다. 물론 그 변명의 설득력은 내 손 밖에 있다.

그러니까 꼭 속도감 있는 문체로만 승부하는 작가는 아니지만 이렇게 속도감 있는 문장으로 적당히 거칠면서도 직설적으로 다른 여러 가지들에 대한 상징들을 은근슬쩍 집어넣는 식의 글들 – 한 15년 전이었으면 별로 흥미 없었을 스타일인데 – 을 근래 나름대로 본받고자 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미국식의 괴팍한 유머를 구사하는 글들이 많이 걸리는 편인데, 손더스는 그래도 몇몇 글들(‘시오크’ 같은)을 제외하면 그렇게까지 괴팍하다는 느낌은 아니다. 번역된 해외 소설에 이만큼 비속어가 많이 나오는 사례도 흔치는 않을 텐데, 굳이 비유하자면 심성은 착한 욕쟁이 아저씨 같은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욕쟁이 아저씨가 늘어놓는 얘기는 – 아무래도 미국 남부의 얘기인지라 우리와는 차이가 없진 않지만 – 결국은 주변에 시트콤 등장인물같은 아해들이 문득 튀어나와 갑자기 인생의 피로함을 과시하곤 하는(이 블로그에 오는 몇몇 이들은 반성하시라) 우리네 인생에 대한 얘기와 많이 다를 건 또 없어 보인다. 살다 보니 내가 놓인 이 개똥같은 상황이 가끔은 웃기는 건지, 심각해야 하는 건지 조금은 헷갈리는 시절이 있었는데, 그 시절에 대해 순발력 있게 써내려 갔으니 독자로서는 그리 무겁지 않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하긴 무거운 얘기를 정말 근엄한 표정으로 해나간다면 듣는 사람은 더욱 부담되지 않겠나.

그런데 내가 봐도 이 글이 재미없어 보이는 걸 보니 정말 배움에는 끝이 없다.

[조지 손더스 저, 정영목 역, 문학동네]

패스토럴리아”의 2개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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