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한공연 갔다 온 기념으로 간만에. 편견이라면 편견인데, 이탈리아 출신의 ‘심포닉’한 밴드들을 색안경을 끼고 보는 편이다. 뭐 이탈리아만의 현상도 아니고 모두가 그런 것도 아니지만, 이 ‘유사 클래시컬’ 밴드들은 당초 나름대로 클래시컬한 구성을 가져가고 싶었지만 송라이팅의 문제였는지 아니면 주변 사정이 받쳐주질 못했는지 어느새 심포닉을 제외하면 딱히 클래시컬하다 할 게 없는(그리고 이전보다 확실히 평이해 보이는) 전개에 이를 만회하려는 듯 과장스러울 정도로 강조된 심포닉을 과시하는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그래도 Yngwie Malmsteen 같은 확실한 교과서들을 참고할 수 있었던 심포닉 파워 메탈 쪽은 조금 사정이 나아 보였지만 다른 동네들은 사정이 심각했다.

Fleshgod Apocalypse의 앨범들이 만듦새가 떨어지는 건 사실 없었다곤 생각하지만 이 밴드의 행보도 사실 여기서 크게 벗어나진 않는다고 생각한다. 심포닉이라기엔 밴드의 본령이 테크니컬 데스에 많이 기울어 있음을 명확히 보여주었던 “Oracles”에 비하면 이후의 앨범들은 드라마틱을 강조한 ‘심포닉’을 제외하면 리프도 그렇고 확실히 좀 더 평이해 보였다. 그런 면에서는 Nuclear Blast에 합류한 게 사실 많이 아쉬운 밴드이기도 하다. Willowtip에 있었으면 밴드 본인들 생각이야 어쨌건 이런 음악을 만들 수 있을 돈줄을 대주진 못했을 것이고, 그랬으면 기름진 심포닉에 기대지 않고 다른 방향으로 승부하려 하지 않았을까? 식의 짐작이다.

공연 보고 나서 쓰는 글에서 무려 두 문단에 걸쳐 좋은 소리 한 마디 해주지 않고 있지만 이런 얘기야 어쨌건 앨범 자체는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확실히 좀 더 난삽했던 “Labyrinth”에 비해 앨범은 곡들의 전개는 물론 중간중간 들어간 피아노 소품들의 배치까지 전반적으로 세심해 보인다. 리프의 트리키함은 확실히 예전만 못하다만 심포닉 사이사이에 섞여들어가는 그루브로 나름의 재미를 더하기도 한다. 사실 Veronica의 소프라노에 묻혀서 그렇지 ‘Cold as Perfection’ 같은 곡의 두드러지는 면모 중 하나는 그 나름의 ‘그루브’라고 생각한다. Veronica도 사실 좀 더 본격적인 역할을 맡아도 좋아 보일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도 문제는… 데스메탈 앨범에 장점이 심포닉과 그루브라는 자체를 납득하기 어려울 이들도 많을 거라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는 심포닉 데스라는 말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밴드는 사실 Fleshgod Apocalypse보다는 Hollenthon이 아닐까? 물론 더 퀄리티 높은 심포닉을 보여주는 건 전자지만 심포닉보다는 데스메탈에 중점을 두는 이들이라면 생각은 아무래도 좀 다를 것 같다. 아니라면? 그럼 난 싸움도 못 하니 그냥 당신 말이 맞는 거로 합시다.

[Nuclear Blast, 2016]

Fleshgod Apocalypse “King””의 2개의 생각

  1. 내한공연을 했는지도 몰랐습니다.ㅎㅎ 알았어도 안갔겠지만..(프로모터 이슈가 꽤 예전부터.. 나중에 뵙게 되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드릴 수 있겠네요)

    사견으로는 이 팀은 oracles 말고는 제대로 된 앨범을 낸 적이 없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 mafia ep까지가 그나마도.. 낫지 않았나 싶지만 oracles 에 비할바는 못 된다고 보이고.. 그냥 willowtip 에 있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라이브도 보면 목에 힘 쫙 빼고 목 아끼는게 보여서 아무튼..

    사실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닌게, 뮤지션으로 명성을 얻고 잘 먹고 잘 살고 가족도 부양하고 하려면 이 방향이 맞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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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간만에 뵙습니다. 그러고보면 Willowtip만큼 기복 없는 레이블도 잘 없는 것 같아요. 몇 장 안 되긴 한데 금년에 산 Willowtip 앨범들도 대개 다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요새 간만에 심포닉블랙 다시 들어보는 중에도 이 밴드는 잘 안 꽂히더군요. 데스메탈에 애매하게 스트링 집어넣는 자체가 취향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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